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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넴의 서재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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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미셸 르 방 키앵

 

 

숲속 산책의 신경생리학적 효능

 

낭만주의자들은 썩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건조하게 표현하자면 숲속 걷기가 주는 혜택은 신경생리학적으로 쉽게 설명 가능하다. 우선 숲의 고요함은 우리 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자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자율신경계를 자극한다. 자율신경계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체의 생존에 관한 순환, 소화 따위의 식물적 생리작용을 조절하기 때문에 식물성 신경계라고도 한다.

뇌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몸 전체로 퍼지는 수많은 신경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뇌에서 탄생한 엄청난 수의 신경은 각 신체기관과 조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말초신경계에 대해서는 이미 고대 해부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가 잘 알고 있었다. 갈레노스는 동물을 치밀하게 해부하여 연구한 끝에 척수와 각 내장에 신경을 퍼지게 만드는 신경세포 집합체인 신경절ganglion에서 두 개의 수상돌기dendrite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경망의 정확한 기능은 20세기 초가 되어 밝혀졌다. 미국 생리학자 존 랭글리는 갈레노스의 발견을 검증하는 한편, 자율신경계가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신경계 모두 심장박동, 호흡, 소화 기능, 평활근(장이나 비뇨계통 장기의 수축을 일으키는 지근)과 같은 생체 기능의 자동 조절, 즉 무의식적 조절에 관여한다.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는 번갈아 활성화된다. 먼저 두려움, 분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교감신경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교감신경은 신장 바로 위에 위치한 부신을 자극하여 행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코르티솔로 몸을 가득 채운다. 정신은 경계 태세를 갖추고 전투나 도주를 준비한다. 이 상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발작과 같다. 근육이 수축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피부의 혈관은 수축하는 동시에 즉각적인 대응을 준비하기 위해 근육과 뇌로 혈액을 집중시킨다.

이와 반대로 휴식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부교감신경계는 생체 기능의 회복을 돕는다. 부교감신경계는 중심이 되는 미주신경을 포함하여 정확히 열두 개의 신경으로 구성되어, 각 기관의 기능 속도를 떨어트린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심장박동과 호흡의 속도를 늦추고 혈압을 낮추라고 명령한다. 부교감신경계 덕분에 우리 몸은 활발한 활동 후에 이완하고,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잠까지 잘 수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는 대립적으로 작동한다. 한쪽이 활성화되면 다른 한쪽은 대기하는 상태에 있는 식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운전자는 가속패달을 밟다가 브레이크페달로 옮겨 밟을 수 있지만 절대로 두 페달을 동시에 밟지는 못한다. 교감신경계가 가속페달 역할을 한다면 부교감신경계가 브레이크페달 역할을 한다.

매 순간 우리 몸 안에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민감한 균형이 이루어져 아드레날린, 코르티솔, 레닌, 인슐린과 같은 호르몬과 신경펩티드, 사이토카인 같은 다양한 연결 분자 그리고 기관의 활동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기타 물질이 생성된다. 이러한 균형이 유지되어야 신진대사, 심혈관 및 호흡 기능, 신체기관과 내장의 기능, 내분비선과 면역 등 모든 신체 기능이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자율신경계를 이렇게 오랫동안 설명한 이유는 숲이 자율신경계를 통해 강력한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자율신경계와 숲의 관계는 2004년 일본에서 숲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다수 진행되면서부터 알려졌다. 일본 니혼의과대학교 칭 리 교수는 이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칭 리 교수는 환경이 생리학적 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팀과 함께 실험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숲으로, 다른 한 집단은 도시로 보냈다. 그리고 피실험자들의 하루 중 기상했을 때, 산책하기 전과 후, 자연을 관찰하기 전과 후에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도시에서 걸은 집단보다 숲에서 걸은 집단의 부교감신경 활동이 100퍼센트 증가했다. 숲에서 걸을 때 이완과 휴식을 조절하는 신경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반면 교감신경계를 가리키는 코르티솔의 농도는 16퍼센트 감소했다.

이 연구를 통해 숲에서는 신체의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생리 기능의 속도를 늦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숲에서 인간은 점차 평정을 되찾아 신체를 재생시키는 생리적, 심리적 행복의 상태가 나타난다. 심신을 진정시키고 호흡과 심박의 템포를 낮추는 것이 바로 단순한 숲속 걷기가 가진 효능 중 하나다.

같은 맥락에서 맥박, 혈압, 심박의 변화를 비롯한 심혈관계에 숲이 미치는 영향도 증명되었다. 특히 일본 학자들은 다수의 연구를 통해 도심에 노출되었을 때보다 숲에 노출되는 상태가 상대적으로 인간의 모든 요소에 긍정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좀 더 최근에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피험자들에게서 숲의 영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 연구에서 45~86세 피험자들에게 심전도 측정기를 차고 숲을 걷게 했는데 숲을 걸은 후 측정기 기록을 분석한 결과 심박과 혈압이 눈에 뜨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숲이 인간의 부교감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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