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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넴의 서재

법륜스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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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보에도 시차가 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인과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 것 같은데 내게는 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진짜 나쁜 짓을 많이 한 것 같은 사람은 잘사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말이 도무지 맞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처님께서는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닷속에 숨는다 하더라도"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엔 그런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과법의 이치가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연과보는 즉시 나타나는 것도 있고, 열흘 후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10년 후에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내 대에 안나타나고 내 후손 대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나 더 윗대 조상들이 지은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어요.

이와 같이 인연과보는 시차를 두고 일어납니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1년 중에 해가 가장 짧은 때가 동지인 12월 22일이죠. 그러면 동짓날이 가장 추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가장 추운 날은 오히려 동지로부터 한 달쯤 지나서 1월 말, 2월 초에요. 또 해가 가장 긴 하지는 6월 22일인데, 실제로 가장 더운 날은 7월 말, 8월 초예요.

 

이처럼 인연이 지어지고 과보를 받기까지 시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좋은 일을 했는데도 나쁜 과보가 온다면 그것은 전에 나쁜 짓을 한 과보가 지금 오는 것이고, 지금 좋은 일을 한 인연의 과보는 아직 올 때가 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에요.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100일을 계속 수행 정진한다면 자기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됩니다.

'내가 고집이 조금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짜증이 꽤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끈기가 참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잔소리가 심한 사람이구나!'

'내가 분별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구나!'

 

만약 우리가 잘못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손해가 나타난다면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지요. 그런데 잘못을 해도 그 과보가 금방 안 드러나면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을 것 같은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 좋은 일을 해도 금방 안 드러나니까 계속하기가 싫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못된 행동은 하기가 쉽고, 좋은 행동은 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데 조금만 길게 보면 잘못한 과보는 피할 수 없고, 좋은 일을 하면 그 공덕이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모습으로 안 나타날 뿐입니다. 모두 저축되어 있어요.
내가 나쁜 인연을 지었을 때, 나쁜 과보가 금방 안 나타난다고 좋아하지 마세요. 그게 다 빚으로 남아 있다가 결국은 돌아오게 됩니다.

따라서 인연을 짓고 과보가 일어나는데 시차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좋은 일을 한다고 '금방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고 기대하지 말고,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과거에 알게 모르게 지은 인연의 과보를 다 받아내야 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공덕을 쌓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살다가 온갖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빚을 많이 졌구나' '내가 지금 빚을 열심히 갚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어려움을 쉽게 넘어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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