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을 걷는다. 찾아가서 걷는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사람을 흙으로 빚었다는 종교적인 신화는 여러 가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도 우리들 신체의 구성 요소로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을 들고 있는데, 쇠붙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흙으로 만들었다는 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 흙에서 음식물을 길어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그 위를 직립 보행하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그 흙에 누워 삭아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 인생의 행태다.
그리고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져 거기 꽃과 열매가 맺힌다. 생명의 발아 현상을 통해 불가시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흙을 가까이하면 자연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들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 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감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약동하는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잘살겠다는 구실 아래 산업화와 도시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문명은 자꾸만 흙을 멀리하려는 데 모순이 있다. 생명의 원천인 대지를 멀리하면서, 곡식을 만들어 내는 어진 농사꾼을 짓밟으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해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_법정스님 「무소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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