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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Writing

말라카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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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레이트 체크아웃 이후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검색창에 '말라카 날씨'를 검색하니 '체감온도 40도' 라고 뜨는 게 인상적이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2.7km 정도의 거리를 부지런히 걷는다. 마지막 날이라 소지품을 좀 버렸다. 배낭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동전을 넣으면 무게를 알려주는 저울이 보인다. 동전은 있지만 무게를 달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냥 지나친다.

 

16시, 쿠알라룸푸르 공항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말라카를 떠나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말라카는 등지고 돌아서기엔 미련이 남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다시 오게 되리라는 걸 직감으로 알기에 서운함을 조금 내려놓기로 한다. 고속버스는 맨 앞줄 1인석을 예약했다. 평일 오후 4시,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은 7명 남짓이었는데.. 전부 이방인으로 보인다. 버스 운전기사는 축구선수 음바페를 닮았다. 슬리퍼를 신고 운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동변속을 반복하자면 슬리퍼가 아무래도 불편할 텐데.. 내 경험상 대형버스의 클러치 페달은 엄청 가볍고 사뿐히 밟힌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문제없어 보인다. 버스 핸들의 엠블럼이 눈에 익다. 타타대우에서 만들어진 버스다. 메이드 인 코리아.

출입문 상단에 걸려있는 전자 시계는 11:12를 표시하고 있다. 고장 난 시계다. 운전석의 속도계도 고장이다. 어떤 속력으로 달리던 바늘은 0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수온계도 규칙 없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고장 나는 중이거나 이미 고장난지 오래된 것 같은 모습이다. 엔진과 변속기.. 동력계통은 지극히 정상으로 보여 진다. 소리에 집중하면 알 수 있다.

버스 기사는 -아마도 멘솔향이 강한- 사탕을 습관적으로 까먹는다. 물 마시고 빵도 먹는다. 선글라스도 꼈다가 신호대기중엔 통화도 한다. 차 내엔 알 수 없는 대중가요들이 흐르고 있다. 나는 한쪽이 고장 난 이어폰을 나오는 쪽만 끼고 평소에 좋아하는 한국가요를 듣고 있다.

18시, 쿠알라룸푸르 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2시간이 조금 안되게 걸렸지만.. 오차범위 5분 안팎이라 그게 그거다. 부산행 비행기는 26시 30분 출발인데 8시간이 넘는 시간이 남는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내게 지루함을 선물한다. 2017년 호주행 일정도 공항대기가 8시간 정도였던 기억이 있다.

공항 구석구석을 살핀다. 남는게 시간뿐이라 공항을 속속들이 파악하여 무료함을 달랜다는 목표로 내부를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들여다본다. 공항 이용자들의 동선, 상점의 배치, 화장실, 공간들이 낯설지 않다. 6년 전의 기억과 감각이 되살아난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추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 반갑다.

 

 

26시 40분,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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