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이문화는 피로감을 준다.
누군가 말한다. “빠른 년생이든 뭐든 머리가 아프다.”, “학번이 같으면 모두 친구인가?”, "저 사람은 두 살 많아도 내 군대후임일 뿐이다.'
초중고를 거쳐오며 나이가 같아야만 친구라 부를 수 있다. 서양에서 말하는 friend와는 다른 개념이다. 우리의 친구는 진정한 의미의 친구라기보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친구의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면 친구를 만나기 더 어렵다. 나이가 같아도 위냐 아래냐를 구분하고 그에 맞게 상대를 상대한다.
어딜 가나 몇 년생인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 적다, 동갑이다를 빠르게 구분하고 그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규정한다. 많은 부분 강요당한다. 불편함을 느낀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처음 만난 이가 한 두 살 많다는 이유로 편하게 대하고 말을 놓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그러려니 해보지만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상황이 반복된다. 상대방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타인의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존대한다. 말을 놓으라고 해도 잘 놓지 못한다. 쉽지 않다. 각자 나이를 먹고 우연히 맺은 관계에서 하루아침에 말을 놓고, 상대는 나를 존대한다는 것이 무척 어색하다 느낀다.
말을 편하게 한다는 건, 반말을 한다는 건,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하대하거나 실수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만나.. 상하관계라는 질서를 규정한다. "내가 왜 저 사람의 위가 되는가? 또는 내가 어떻게 저 사람의 아래가 되어야 하는가?"
많은 불편함과 복잡한 상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부분 몇 살 더 먹은 일면식이 없는 상대에게 말을 놓으라고 권하는 편이다.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모든 불편함을 해소하긴 어렵다.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냥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쪽에 체념할 뿐이다.
동방예의지국, 유교문화라는 이름하에 많은 것들을 불편하게 한다. 비효율을 낳고 인간관계의 서열을 만든다. 이런 문화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의식할 필요도 없이 지내면 될 것이다. 현실에선 딱히 방법도 없지 않은가?
좀 다른 생각을 가진 (나같은) 누군가는 불가피하게 관계나 모임을 피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를 가지고 있다. 동등한 관계에서 교류하고 교제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나이를 묻고 줄을 세우는 문화가 나를 불편케 한다. 상대와 편하고 동등한 관계 속에서 친구가 될 수 없음에 때론 안타까움을 느낀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와 더불어 나이를 따지고 위아래를 구분하는 수직적 문화가 한국 경제발전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인정한다. 이제는 그것을 좀 내려놓으면 좋을... 시기가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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