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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넴의 서재

철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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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강신주 지음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 제한된 것만을 하도록 허락된 자유. 자유정신이 어떻게 이런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자유정신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말한다. 우리 정신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는 '낙타'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일체의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정신이다. 마치 낙타가 주인이 등에 짐을 올리면 아무런 저항 없이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사자'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낙타와는 달리 사자의 등에는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어떤 짐도 올릴 수가 없다. 짐을 올리려면 사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일체의 억압을 부정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 즉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정신이다. 니체의 아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누군가와 관계할 때, 충돌과 대립으로 힘든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이통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얼음처럼 고착된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까? 공정함을 잃어버리고 남과 나를 구별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인가? 그러나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진단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단히 자신의 마음이 좁아져 있지 않은지 반성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자기 중심적인 소망을 괄호 친다면, 사실 모든 만남과 모든 헤어짐은 우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소망스러운 만남에 필연의 아우라를 부여하려고 할지라도, 지금의 만남이 우발적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숙명이나 운명이란 말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점을 정확히 통찰했던 옛 동양 사람들은 '회자정리' 라는 말을 썼다.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왕충이란 철학자가 숙고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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