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다가온다. 어떤 것은 이미 지나버렸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체감하지 못하는데, 고개를 들어 현재를 마주하면 세월은 늘 유속이 빠르다.
앞으로 점점 가속이 붙을 거라고들 겁을 주는데,
유통기한
스킨, 로션, 향수
비타민, 연고, 안약, 티트리오일
샴푸, 바디워시, 선크림
생각난 김에 하나하나 전부 확인해 본다.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_ 영화 <중경삼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기한을 조금 넘긴다고 대부분 큰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좀 개운치 못하다. 가능한 날짜 내에 소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流通期限 한자식 표현보단 Best Before 영어식 표현이 조금은 너그러운 느낌이다.
'끝을 내버리는 것'과 '넘기더라도 뭐 베스트는 아니지만' 뭐 이런 여지를 조금은 남겨 두는 것 같아서일까.
방사성 폐기물이 왜 떠오르는지,
연료로 사용되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폐기물의 처리는.. 길게는 몇십 만년을 보관해야 한다는데 그 세월이 실감 나지 않는다. 수십 만년 후에는 독성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걸까? 완전무결하게? 이 정도라면 인간의 시간에서는 영원하다고 볼 수 있다. 사랑도 만년이면 끝이 나고 마는데.
플루토늄과는 반대로 영원히 유익한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그저 내버려 두어도 영구적으로 생산적이거나 환경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물질. 태양이 떠오른다. 영원히 타오르는. 지구를 생명의 땅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태양도 언젠가 꺼진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 태양이 수명을 다한 후 소멸예정이라니.
애프터쉐이브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는 잠시 중경삼림의 대사와 배우 목소리를 떠올리다가 우주로 나가서 태양까지 갔다가 눈앞으로 돌아왔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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