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 새로운 물건을 선호하지 않는다.
신발을 사서 일부러 더럽힌다. 듬성듬성 때가 묻게끔.. 자연스러운 얼룩.. 가능한 사용감이 느껴지도록(그래봐야 새 신이라는 걸 감출 수 없다)
옷이나 가방도 신품을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은 채로 여러 번 세탁을 하기도 한다. 물건이 너무 새삥인 상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빈티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래전 군대 훈련병 시절이 생각난다. 조교들이 색바랜 군복을 입고 서로 어떤 무늬가 더 멋있다거나 물빠짐이 자연스러운 군복을 찾아 제대하는 선임으로부터 물려받아 바꿔 입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과 방식에 마음 속으로 동의했고,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뻣뻣하고 새 것인 전투복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사이즈는 괜찮아도 몸에 닿는 감촉, 움직일 때의 미묘한 불편감.. 내 옷이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작위적인 느낌.
대략 '87년산 군용 도장이 찍힌 프라다(?)색감의 한겨울용 내복을 물려받아 몰래 입고 다니다 군수장교에게 걸려 말년에는 영창 갈뻔한 기억도 있다. 사제품이 아니라 군대에서 보급한 오리지널 '군용'인데 그냥 입게 해주면 안되겠냐고 사정해 보았지만 눈앞에서 가위로 여러 차례 잘리는 신세가 되었다.
빈티지를 좋아한다.
오래 사용한 여행용 배낭이 있다.
2007년 국토대장정
2013년 유럽여행
2017년 호주여행
2023년 태국여행
대략 10일 이상의 여정시엔 항상 함께 했던 가방이다.
어느덧 소유한지 15년이 넘었는데... 1년에 1회 정도로 사용 빈도가 없는 편이다.
추억의 물건, 손에 익은.. 이제는 낡아서 좀 찢어지고 구멍 난
좀 더 보유하며.. 장기여행 때 사용하고 싶지만.. 뭔가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빛바래고 천이 흐물거리는 듯한 느낌에 가방 가득 채우고 뛰어다니면, 어느샌가 지퍼가 살짝 벌어진 틈을 따라 가방이 입을 벌리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뛰어서 계단을 급히 내려오는데.. 누가 뒤에서 가방을 잡아 끄는 듯한 느낌에 거울에 옆모습을 비춰보니 가방이 반쯤 입을 벌리고 있었다. 떨어뜨린 건 없는지 왔던 길을 족히 200m는 되돌아가며 확인했다. 신체활동이 많아지면.. 가방이 중력을 받고 외피(천)에 탄력이 떨어져.. 가방의 모양이 허물어지는..
그 가방이 이젠 낡고 삭아 아랫부분에 구멍이 생겼다..... 조금씩 커지고 있다.. 무게를 감당하는 위치라 수선에도 한계가 있고.. 다른 부분에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
대체품을 찾고.. 버리거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렵다.
비슷한 사이즈에 같은 용도, 브랜드의 가방을 당근마켓에서 구해왔다.
낡은 가방이었다.. '세탁해서 쓸 것'을 감안해서 싸게 판다고 했다.
사진보다 실물 상태가 별로였지만 세탁하고 내 몸에 맞게 조절하니 좋았다. 대체품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또 다른 빈티지가 쉽게 생겼다. 기념으로 템플스테이에 동참했다. 이달 중순 말레이시아 여행도 이 친구와 함께할 예정이다.
'빈티지가 편하다.'
새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아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뭔가 손에 익지 않은 것도 신경 쓰인다.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물건이.. 수명을 다했고.. 버릴만한 시기가 지나가는데.. 가능한 고치고 기워입고, 최대한 소유했다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시점에야 떠나보낸다. 쉽게 내치기가 어렵다.
구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품이나... 중고시장에 내놓는 일은 아주 쉽지만 오래 함께하며 사용하다가 작별해야 하는 행위가 어렵다. 진통을 겪는다.
15년 이상 함께였던 이 가방을... 확실한 대체제가 마련되었음에도 어찌해야 할지 아직도 뚜렷한 입장정리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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