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보기
얼마 전 멍하니 축구를 보다가.
11대11 공을 상대편 골대에 집어넣는 게임. 많이 넣으면 이긴다. 스포츠는 경기를 뛰는 선수만 바뀔 뿐, 같은 행위의 반복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인간의 활동이나 대부분의 일들이 그와 같다.
플레이어만 바뀌어.... 먹고, 자고, 일하고, 운동, 취미, 여행..... 같은 행위들의 무한반복.
일상에 새로운 것이 없다. 40년쯤 살다 보니... 대부분 아는 것, 이미 해본 것, 거의 다 경험했고.. 먹어본 것들의 연속.
흥미가 떨어지고, 재미를 못 느끼고... 권태.... 무기력... 똑같아 보이는 것들에 대한... 시시함.
그래서..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계속해서 넘어가면서.. 시스템 하에.. 주어진 과업을 달성해야 하는 구조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별다른 깊은 사유나...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태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새롭게 하기'
매일 반복되는 일상, 행동, 날마다 마주하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본다.
항상 똑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특히, 생명체(풀 한 포기 나뭇잎 하나라도)라면 결코 어제와 같지 않다.
"누구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_헤라클레이토스
같아 보이는 사람, 생물, 행위라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미 어제의 강물과.. 날씨, 구름 같은 것들은 전부 흘러가고 없다.
어제와 오늘의 나도 다른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거나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새롭게 한다. refresh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마주한다.
여행자의 시각이나 마인드가 좋겠다. 또는 아이의 눈처럼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는 노력도 괜찮을 것 같다.
아주 익숙하고.. 너무... 편하게 눈에 손에 익은 것들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해본다.
시간이 미쳤다. 갈수록 정신없이 빨리 간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자꾸 빨리 가는 걸까?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아주 단순명료하다. 기억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시기가 길게 느껴지고, 전혀 기억할 게 없으면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 '회상효과reminiscent effect'다.
인생에서 어느 시절의 기억이 가장 뚜렷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학창시절을 언급한다. 가슴 설레는 기억이 많은 그 시절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시간은 아주 미친 듯 날아가기 시작한다. 당연하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만한 일들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죄다 반복적으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들뿐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올 한해도 불 보듯 뻔한다. 일 년 뒤, 난 또다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미친 시간'에 한숨 쉴 것이다.
한 집단의 역사는 집단적 기억이다. 기억을 통한 의미 부여의 과정을 통해 한 집단의 아이덴티티는 유지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 만해진다.
삶의 속도와 기억의 관계에 관한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들을 자꾸 만들면 된다. 평소에 뻔하게 하던 반복되는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라는 이야기다. 인생과 우주 전반에 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계획은 아무 도움 안 된다.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들을 시도해야 한다.
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를 측정했다. 약 5초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불과 5초만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과거나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5초의 객관적 단위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팽창될 수 있다. 제발 현재를 구체적으로 느끼며 살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시간이 미치지 않다.
_김정운 「남자의 물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