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자빠지는 의자'를 사야 한다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다. 현상학적 지리학을 대표하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이푸투안 1930~ 교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공간space'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장소place'를 개념적으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구체적 행위나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 있는 장소로 바뀐다.
의자를 사야 한다! 뒤로 약간 자빠지듯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그런 의자를 사야 한다. 의자야말로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왕과 귀족의 지배에서 풀려난 근대 부르주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들만의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치펀데일풍風 의자'가 바로 그것이다. 의자에 앉았을 때, 주체로서 삶이 확인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거지 같은(!) 성격 때문에 평생 대인관계 장애에 시달렸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어디로 이사 거든, 르 코르뷔지에 1887~1965가 다자인한 1인용 가죽 소파만큼은 꼭 들고 다녔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겪게 되는 장소 상실로 인한 우울함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뒤로 자빠지는 의자'는 구원이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한없이 기죽이는 권력용 회전의자나 검사 앞의 접는 철제 의자는 결코 아니다. 허리 꼿꼿이 세워 앉아야 하는 사무용 의자 또한 절대 아니다. TV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쓰러져 자게 되는, 3인용 인조가죽 소파는 정말 최악이다.
한쪽 팔로 턱을 괴고 기품 있게 사색하거나, 턱을 만지작거리며 우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세 나오는' 의자여야 한다. 의자는 성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맞은편 사람을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폼 나는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 따위를 만지작거리는 일을 정말 없어야 한다.
숟가락을 잡으면 뜨게 되고,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된다. 도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도구는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아주 편하고 기분 좋게 앉을 수 있는, 뒤로 자빠지는 의자로 규정되는 의식이란 바로 '소통과 관용'이다.
_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