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물에서 놀지 못하는 이유
그 정도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한계에 부딪쳐 계속하는 것이 대한 두려움.
고통스럽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다.
정상을 향하기보다 안주하는 삶이 편하다.
미친듯한 경쟁과 스트레스, 압박감을 감내할 의지가 없다.
그릇이 작다. 멘탈이 약하다.
취약성, 깨지기 쉬운 혹은 낯짝이 두껍지 못한.
실력이나 깜냥의 이유보다 경쟁을 싫어하는 성향일 수 있다.
'승자독식', ‘1등만 기억하는 아름다운 세상'과 같은 사회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1등 아래로 수많은 패배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무대 뒤로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다.
남다른 노력과 피, 땀, 눈물을 증명하지 못한 채 쓸쓸히 흩어지고 만다.
경쟁competition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
선의의 경쟁, 각축을 벌이는, 흥미로운, 최선을 다하는,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그 긍정적인 효과는 잘 알고 있다. 경쟁은 필요하다. 불가피하다. 인류사가 그 자체로 경쟁(전쟁)의 역사다. 세상은 유한하고 희소한 자원을 두고 벌이는 크고 작은 경쟁의 무한반복이다. 고리타분한 비유지만 우리도 경쟁의 산물이며, 살아가는 과정이 더 높은 위치나 더 많은 것들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다.
권력(지위), 돈(재물), 땅(영토 또는 토지), 명예(명성), 건강(무병장수), 사랑(이성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힘들다. 때론 피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이며, 에너지 소모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특히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살아남는 구조에서의 서바이벌은 더욱.
예를 들면, 게임과 같은 유희도 상위 레벨로 올라갈수록 예상치 못한 실력자가 즐비하고 승리를 따내기 어렵다. 자신의 실력 역시 뛰어나다 하더라도 최상위 레벨로 갈수록 ‘종이 한 장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작은 실수가 승패를 결정하는 질식할 것 같은. 응당 큰 강도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즐기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고,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있다.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힘을 빼는 것', '무아지경에 빠져 드는 것'이 초고수의 마지막 단계라는 걸 이론상으로 알지만 마음대로 안된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럽다.
편법, 비방, 중상모략, 물타기, 심판매수... 치열한 경쟁일수록 정당한 방법만으로는 모자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선보다 악이 승리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극단을 향해 달릴수록 선과 악의 대결보다는 악과 악의 대립으로도 보인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도 사실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경쟁을 싫어하는 인간이 있다. 경쟁의 살얼음판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모습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가능한 경쟁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는 삶을 모색해야 한다. 그들에겐 그것이 생존의 길이다.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1등만 요구되는 사회 분위기를 조금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을 다그치는 '속도'와,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 많이 얻을 것을 요구하는 '효율'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속도와 효율을 무한대로 강요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부여안고 살 것을 강요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되고, 조금 덜 이익을 보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를 위해 그토록 쉼 없이 달리고 무엇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