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넴의 서재

죽음의 수용소에서

yeminem 2023. 7. 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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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빅터 프랭클

 

 

1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과거 일들을 회상했다.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작은 해프닝이나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향수 어린 추억이 그들을 성스럽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도 했다.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존재가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은 그리움을 향해 먼 과거로 달려갔다.

나는 상상 속에서 버스를 탔고, 열쇠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문을 열었다.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전등을 껐다. 우리 생각은 대게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에 집중돼 있었고, 이런 기억들이 때로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완전히 잊기도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 호송 열차의 작은 창살 너머 석양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찰츠부르크 산 정상을 바라보는 우리 얼굴을 보았다면, 그것이 절대로 삶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 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곤 했다.

수용소에서 일할 때도 우리는 종종 옆에서 일하는 동료의 눈을 돌려 바바리아 숲의 키 큰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뒤러의 그 유명한 수채화처럼)을 바라보게 했다. 그 숲은 우리가 대규모 비밀 군수품 제조 공장을 짓는 데 동원됐던 바로 그 숲이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 바닥에 앉아 수프 그릇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러더니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우리는 서쪽에 빛나고 있는, 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끊임없이 색과 모양이 변하는 구름으로 살아 숨 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흙 바닥에 패인 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빛나는 풍경이 잿빛으로 지어진 우리의 초라한 임시 막사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감동으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2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제 수용소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수감자들이 보인 반응이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라는 이론을 입증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 직면한 인간에게는 자기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없단 말인가?

이론은 물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을 통해서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있다. 수용소 체험으로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입증해 주는 예(이런 이야기는 종종 영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인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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