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Runner 다

마라톤은 왜 42.195km일까?

yeminem 2023. 4. 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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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기원은 49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의 전투에서 비롯된다. 아테네 동북쪽에 위치한 마라톤 들판에서 아테네의 밀리티아데스(Militiades) 장군이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이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서 필립피데스(Philippides)가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약 40㎞를 쉬지 않고 달려갔다. 필립피데스는 장거리를 종주한 뒤 “우리가 승리했다. 아테네 시민들이여, 기뻐하라.”라고 외치고 죽고 말았다.

 

근대올림픽 부활 당시 소르본대학의 언어학자 이셀 브레얼 교수가 이러한 고사(故事)를 쿠베르탱 남작에게 말한 데서 마라톤은 올림픽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고,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인 아테네대회 때부터 마라톤경주가 실시되었다.

 

필립피데스가 달린 거리는 뒷날 실측해 보니 36.75㎞였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지의 형편에 따라 경주거리가 40㎞를 전후로 하여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거리를 통일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대회 때의 코스인 42.195㎞를 정식거리로 채택하게 되었다.

-출처 : 마라톤(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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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유래는 전설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 1만 명과 페르시아군 10만 명이 아테네 동북방으로부터 40.2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대전투를 벌였다. 아테네군은 격전 끝에 페르시아군을 물리쳤고,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 도착해 수많은 시민들에게 “기뻐하라, 우리가 정복했다.”는 한마디를 전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페이디피데스가 달린 거리가 42.195km라서 이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 거리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 알고 보면 이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다.

마라톤 경주로에 세워진 페이디피데스의 동상

 

마라톤 전투를 자세히 기록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책은 물론, 플루타르크가 기록한 마라톤 전투에도 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 전설은 기원후 2세기 때의 작가 루키아노스에 의해 처음 언급됐는데, 아테네까지 달려간 병사가 페이디피데스라고 하는 것도 의문이 많다. 페이디피데스는 원래 페르시아군이 마라톤 평원 근처 해안에 상륙하자 아테네군 사령부가 241.4km 떨어진 스파르타에 긴급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병사의 이름이다. 그는 꼬박 이틀 동안 달려 원병을 요청했지만 스파르타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틀 동안 241.4km를 달려가서도 끄떡없었던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에서 전투가 끝난 뒤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아테네까지 40km를 달린 뒤 쓰러졌다는 것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일부에서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에서 스파르타까지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달렸던 내용이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마라톤 거리가 241.4km가 돼야 한다.

 

그렇다면 마라톤 거리가 42.195km로 결정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거리로 결정된 것은 1908년에 열린 제 4회 런던 올림픽에서부터다. 처음에는 출발 지점을 주경기장으로 해 총 42km를 달리기로 정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영국 황실 사람들이 “마라톤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 출발선을 윈저궁 황실 육아실의 창 아래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거리가 195m 더 늘어났고, 이후부터 42.195km로 굳어졌다.

 

그러나 1912년 스톡홀롬 올림픽 마라톤 거리는 또 변해 40.2km였고,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땐 42.75km나 됐다. 이렇듯 올림픽 마라톤 코스 길이는 주최 측의 사정에 따라 달라졌다. 결국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1908년 런던 올림픽 때를 기준으로 하자’는 의견이 채택돼 현재의 42.195km로 확정됐다. 당시 영국은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이 가장 강력했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마라톤은 왜 42.195km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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